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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월요일, 국가공휴일

전시실 안내1층 1관 [영웅관]화살표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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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 한국전 참전 기념탑
A Monument Commemorating Ethiopia’s Participation in the Korean War
UN참전 16개국의 참전 기념비를 건립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6.25 당시 주로 강원도 지역에서 활약한 에티오피아군을 기리기 위해 1968년 춘천에 에티오피아참전 기념탑을 건립하였다.
에티오피아군은 1951년 8월 최초의 전투를 화천일대에서 치렀으며, 이후 화천 문등리와 김화 일대에서 큰 전공을 거두어 미국으로부터 대통령 부대표창을 수여 받았다.
1968년 3월에 착공한 에티오피아 참전 기념탑은 에티오피아를 상징하는 사자상을 형상화하여 16m 높이로 설치하였으며, 1968년 5월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방한에 맞추어 완공되었다.

이미지 [유엔안전보장이사회 한국전 참전 결의 (출처 : 국가기록원)]

유엔의 한국전 참전 결의
UN Resolution to Participate in the Korean War
1950년 6월 26일 오전 4시에 긴급 소집된 UN안전보장이사회는 북한의 남침을 '국제평화의 파괴행위'로 규정하고, 북한에 "침략을 중지하고 38도선 이북으로 물러날 것"을 촉구하는 등 원상회복을 위한 조치를 취하였다. 이러한 결의에도 북한의 침략행위가 계속되자 미국은 UN결의를 수행하기 위해 해ㆍ공군의 지원조치를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한편, UN회원국들에게 원조를 요청하는 결의안을 안보리에 상정하였다.
이에 따라 6월 28일 개최된 안보리에서 "UN회원국은 군사원조를 통해 북한의 침략을 격퇴하도록 대한민국을 지원한다."는 결의안을 찬성 7표, 반대 1표, 기권 2표로 가결함으로써, UN창설 이후 최초의 '집단 안전보장 조치'로 참전을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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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티오피아의 참전 결정
Ethiopia’s Decision to Participate in the Korean War
1950년 7월 14일 UN 사무총장은 안보리 결의에 지지를 표시한 53개 회원국 정부에 지상군의 추가지원을 요청하는 포괄적인 메시지를 발표하였다.
이에 한국전쟁에 파병을 지원한 국가는 현저히 증가하였으며, 에티오피아도 이들 중 하나였다. 일찍이 에티오피아는 외세의 침략을 무찌르기 위해 국제연맹에 지원을 요청했으나 무위로 끝난 쓰라린 역사를 갖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경험은 에티오피아로 하여금 '강력한 집단행동으로 세계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게 하였다. 때문에 에티오피아는 부유한 국가는 아니었지만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는 UN의 대의에 따라 파병을 결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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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도착하기까지
Until They Arrived in Korea
에티오피아 정부는 1,200명 수준의 1개 보병대대 파병을 결정하고 1950년 8월 황실 근위대로 대대를 편성하였다. 이들은 다음해 4월 초까지 수도인 아디스아바바 근교의 한국 지형과 유사한 지역에서 영국군 교관들로부터 강훈련을 받았다.
대대는 1951년 4월 13일 출국 신고식에서 황제로부터 ‘상대에게 결정적 타격을 주거나 궤멸시키는 대대’라는 의미의 [Kagnew대대] 라는 명칭을 부여 받았다.
제 1Kagnew대대 장병 1,153명과 파한 에티오피아군 사령부 요원 35명으로 구성된 제1진 1,188명은 열차로 이동, 다음날 지부티항에서 미군 수송선 [제너럴 매크리아 (General Macrea)호] 에 승선하였다. 그리고 21일간의 긴 항해 끝에 1951년 5월 6일 아침 부산항에 도착해 이승만 대통령의 환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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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현의 서전
Beginning of the War at Samhyeon-ri
에티오피아 군의 제1진인 제1Kagnew대대는 미 제 7사단에 배속되어 주로 중동부전선의 적근산 – 삼현부근과 단장의 능선 및 펀치볼 부근에서 활동하였다.
1951년 8월 9일 화천 노동리에서 사단 예비로 편성된 대대는 9월 14일까지 적근산 – 삼현일대에서 정찰 및 탐색전을 수행하였다.
1951년 8월 12일 대대는 적ㄷ근산 전방 797고지 서북쪽의 봉당덕리 부근에서 중공군과 참전 이래 최초의 교전을 벌였다. 8월 15일엔은 방어진을 목표로 침투한 중공군을 4시간여의 격전 끝에 물리치는 등 대대는 9월 14일까지 18회의 정찰 및 탐색전을 실시하여 탁월한 전과를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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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버 작전
Cleaver Operation
대대는 적의 병력과 물자에 손실을 주고, 금성 진격의 전진기지를 확보하기 위한 클리버 작전에서 중공군에 대한 공격을 담당하였다.
대대는 그동안의 전투에서 얻은 교훈을 토대로 700고지를 점령한 후 602고지를 공격한다는 계획에 따라 1951년 9월 21일 공격을 개시하였다. 일진일퇴의 백병전 끝에 700고지를 점령했으나, 602고지는 적의 완강한 저항으로 탈취에 실패하였다. 다음날 재공격에 나선 대대는 공군의 항공 지원에 힘입어 격렬한 백병전을 벌인 끝에 602고지를 점령하고, 고지에 구축해 놓은 적의 방어시설을 파괴한 후 복귀하였다.
이 공로로 대대는 미국 대통령의 부대 표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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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태리 전투
Battle of Satae-ri
1951년 10월 21일 프랑스대대와 임무를 교대한 대대는 단장의 능선 일대와 펀치볼 부근에서 작전을 수행하였다. 대대는 진지를 점령한 후 12월 31일 펀치볼 부근의 만대리로 이동해 1169고지 방어임무를 수행할 때까지 사태리-문등리 일대에서 수차례에 걸쳐 교전을 실시하였다.
1951년 12월 25일 밤, 제2중대 정찰대는 눈으로 덮인 사태리 인근 550고지에서 매복중인 적으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았다. 정찰대장 델레니 소위는 진두에서 대원들을 격려하여 방어태세를 편성하던 중 적탄에 의해 전사하여 에티오피아군 장교의 최초 희생자가 되었다. 그를 대리한 선임하사관은 아군의 야포와 전차포의 지원 아래 적의 포위 공격을 근접전으로 격퇴하였다.
이어 대대는 펀치볼 부근에서 소규모 수색전을 실시한 후 1953년 2월 23일 가평으로 이동함으로써 한국에서의 전투를 종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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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지구 방어전
Defensive Operation at Cheorwon Area
대대는 휴전 협상에 따라 피아가 현재의 전선을 유지한 채 치열한 고지 쟁탈전을 벌이던 시기에 활동하였다. 전략적 요충지인 철의 삼각지대 미륵동 부근의 고지대 진지를 인수한 대대는 중공군과 마주하며 현지작전 적응에 주력한 후, 1952년 6월 6일 전방의 412고지 인근에서 첫 번째 전투를 벌였다.
6월 25일 연대 예비로 물러난 대대는 적진을 탐지하고 포로를 획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찰대를 전방에 파견하여 적과 수시로 교전을 벌였다. 특히 7월 8일에는 적의 전진기지를 파괴함으로써 철원-평강간 요지에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려는 적의 계획을 좌절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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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지구ㆍ삼각고지 전투
Battle at Gimhwa Area and Hill Samgak
1952년 9월 23일 콜롬비아 대대와 임무를 교대한 에티오피아 대대는 김화 서북지역의 진지를 점령하고 중공군과 대치하면서 11월 12일까지 유곡리, 도창리 일대에서 크고 작은 전투를 실시하였다. 특히 10월 21일부터 25일까지 지속된 삼각고지 부근의 전투는 제2 Kagnew 대대 참전 이래 최초의 격전이었다.
이 전투는 적의 주 거점인 오성산을 위협하고 아군의 주 저항선의 안전도를 높이기 위한 쇼다운 작전의 일환이었다. 대대는 10월 14일부터 시작된 김화지구 고지 쟁탈전에서 삼각고지 서쪽과 그 후방에 배치되어 삼각고지의 방어력을 보강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삼각고지를 빼앗긴 중공군은 10월 23일, 고지를 사수하고 있던 미군에 야간역습을 실시함으로써 양측간에 격전이 전개되었다. 이때 수적으로 우세한 적의 공격을 받은 대대는 일진일퇴의 공방전 끝에 중공군을 격퇴시키고 삼각고지 방어에 크게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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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곡천 유역 대진전
Great Advance at Yeokgokcheon Valley
대대는 1952년 12월 30일 타일랜드 대대로부터 진지를 인수한 후 다음해 4월 22일 미군에 인계할때까지 역곡천 유역에서 중공군과 대치하면서 스맥작전 과 엉클고지 전투를 수행하였다.
스맥작전은 1953년 1월 25일을 기해 역곡천 부근의 T자형 고지 동쪽에 위치한 Spud고지(일명 감자고지)를 공지 합동으로 공격하는 것이었다. 작전 개시 하루 전, 대대장은 적의 수색기지인 180고지를 파괴하기 위해 제2중대에 공격을 명령하였다.
적의 완강한 저항을 극복하고 고지를 점령한 제2중대는 대대 규모의 병력으로 반격해온 적을 물리친 후 진지를 파괴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어 대대는 4월 16일 역곡천 남쪽의 엉클고지 전투에서 적을 격퇴시키고 한국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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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어고지 서전
Beginning of a war at Hill Ageo (Alligator Jaws)
제3진으로 한국에 도착한 제3Kagnew대대는 1953년 5월 11일 역곡천 유역에 배치된 이래로 휴전시까지 요크 및 엉클고지 일대에서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들이 점령한 덕산리-갈화동 부근의 진지는 제2대대가 방어하던 곳으로 중공군의 티본(T-Bone)고지와 마주하였고, 전면에는 악어가 입을 벌리고 있는 형상의 악어고지가 있었다.
5월 14일 밤, 대대는 적이 경계초소와 잠복지로 활용중인 악어고지 아래턱 서단의 198고지 부근으로 정찰대를 파견하였다. 정찰대는 다음날 새벽 3시경 잠복지역으로 접근하는 적과 교전을 개시하였으나, 실전경험의 부족과 탄약의 고갈로 급박한 상황에 처하였다. 결국 포대의 포격지원으로 적의 공격을 둔화시킨 정찰대는 퇴로 차단을 통해 적에게 큰 타격을 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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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크ㆍ엉클고지 전투
Battle of Hills YokeㆍUncle
이 전투는 대대가 대진 말기에 요크(York) 및 엉클(Uncle)고지에서 중공군의 침공을 받고 이를 격퇴한 방어전이다.
5월 19일 밤 11시경 대대는 포로를 획득하기 위해 요크고지 전방에 정찰대를 매복시켰다. 자정이 지나자 적은 요크 및 엉클고지를 포위하고 공격을 단행하였다.
적과 아군의 탄막사격과 각종 포격이 집중되면서 요크고지는 화염에 휩싸였고, 요크고지에 대한 포격으로 물러났던 적이 공격에 가세함으로써 정찰대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결국 정찰대장의 탄막사격 요청에 의해 아군의 포탄이 정찰대 주변에 적중하여 적은 티본고지 방면으로 물러나고, 포병은 연신 사격을 가하여 이들을 격멸하였다.
이 전투에서 대전과를 올린 대대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부대 표창을 수여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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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 전후의 활동
Activities Before and After the War
대대는 요크 및 엉클고지 전투 후 6월 30일까지 탐색과 점복전을 실시하다 미군과 임무를 교대하면서 연대 예비로 전환하였다. 이후 대대는 갈화동부근의 327고지를 점령하고, 7월 18일 187고지(일명, Snook고지)부근에서 교전을 벌인데 이어 7월 25일에는 187고지 경계초소를 기습공격한 적과 한국에서의 마지막 전투를 치렀다.
에티오피아는 1951년 5월 6일 한국에 도착한 이래 1956년 3월 1일 철군할 때까지 평균병력 1,170명 규모의 1개 보병대대를 1년 단위로 교체 참전 시켰으며, 적십자 소속의 간호요원을 유엔군 병원에 파견함으로써 유엔군의 작전수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특히 전쟁이 한창이던 1953년 경기도 동두천에 보화고아원을 설립하고 1956년까지 한국인 고아들을 보살피기도 하였다. 휴전 후에는 유엔국제아동긴급기금, 교회세계봉사단등을 통한 의료지원으로 대한민국의 전후복구에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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